"Expecting democracy to bloom in Korea was like expecting a rose to bloom in a trash can."
2026년 3월 2일 월요일
1983.10.09 아웅산 묘역 테러 사건
아웅산 묘역 테러 사건미얀마의 옛 수도 양곤에 위치한 아웅산 묘소 묘역에서
북한이 미리 설치한 테러 폭탄이 터져
한국인 17명과 미얀마인 4명 등 21명이 사망하고
수십 여명이 부상을 입은 초토화 폭탄 테러 사건이다.
1.북한이 전두환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해 아웅산 테러를 일으킴
2.대통령은 다행히 죽음을 면했지만, 이때 죽은 정부관료들 중에는 지금도 엘리트로 평가될만한 사람들이 많음
3.이들을 기리기 위해서 올해 12월 20일 사건 현장에 30주년 추모비가 세워짐
*사건 설명
(김포공항을 떠나는 전두환 대통령의 비행기)
(당시 전두환 대통령의 해외순방 일정)
1983년 10월 8일, 전두환 대통령은 지금도 한국 최고의 엘리트라고 평가되는 정부관료들과 함께 해외순방에 나섰다.
원래 전두환 대통령은 인도를 첫번째로 방문할 예정이었지만, 인도로 가는 길목에 있는 버마(미얀마)를 먼저 방문하기로 결정했다.
이때 북한은 전두환 대통령이 수도 양곤(당시 이름은 랭군)에 있는 아웅산 국립묘지를 참배할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했다.
그리고 전두환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해 3명의 특공대를 파견했다. 김일성의 허락을 받은 김정일의 소행이었다.
(특공대가 타고 온 선박. 당시 미얀마는 북한과 수교중이었기 때문에 북한 선박이 자유롭게 오고 갈 수 있었다.)
일찍 양곤에 온 그들은 2주동안 철저히 테러 준비를 했다.
한편 사건 당일의 묘지참배는 원래 10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으나,
유칫흘랭(U Chit Hlaing) 당시 버마 외무장관이 자동차 고장으로 늦게 오는 바람에 10시 30분으로 지연되었다.
1983년 10월 9일 오전 10시 28분, 아웅산 국립묘지에서 전두환 대통령을 제외한 정부관료들이 예행연습을 실시하던 도중
강민철 대위를 비롯한 3명의 북한군 특공대가 건물 위에 설치한 폭탄을 터뜨려 21명(미얀마인 4명 포함)이 사망했다.
(사건 직후 아웅산 국립묘지)
정부 고위관료 중 유일한 생존자는 이기백 합참의장이었다.
그들과 함께 참석할 예정이었던 전두환 대통령은 양곤 시내의 교통정체 때문에 11시에 도착해 목숨을 건졌다.
(차 안에 있었던 전두환 대통령은 묘지에서 폭발음과 함께 흰 연기가 나는 것을 목격했다.)
진OO 소좌와 강민철 대위
버마 당국은 처음엔 북한의 소행임을 부정했지만, 사건현장에서 불발된 소이탄이 발견되자 사실을 인정했다.
범인 체포 과정에서 신기철 대위는 버마군에 의해 사살됐고, 진OO 소좌는 체포되어 1986년 교수형에 처해졌다.
현장에서 자폭에 실패해 한쪽 팔만 잃고 체포된 강민철 대위(당시 29세)는 양곤의 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하다가 2008년 5월 사망했다.
사건 발생 후, 미얀마는 물론 코스타리카 같은 북한에 우호적이던 남미 국가들도 북한과 단교했고,
69개국이 규탄성명을 발표하거나 대북제재를 시행했다.
소련과 중국도 북한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결국 이 사건은 북한이 국제사회로부터 완전히 고립되는 계기가 되었다.
1999년 국가정보원은 강민철을 한국으로 소환하려 했지만, 햇볕정책을 시행하던 김대중 정부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노무현 정부도 강민철 송환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강민철에 대해 보고받은 것이 없다(국정원 고위간부의 증언)"가 현실이었다.
*사망자
함병춘 대통령 비서실장
(1932 ~ 1983)
-연세대학교 법학과
-연세대 법학과 교수(1959~1970)
-박정희 대통령 국제정치특보(1970)
-주미대사
-외교안보연구원 연구위원
-박정희 대통령 외교특보(1979)
-> 이승만 정부에서 부통령을 지낸 독립운동가 함태영의 아들.
연세대 법학과 교수로 일하다가 1970년 정계에 입문해
박정희 대통령의 국제정치특보와 외교특보를 지냈다.
최연소 주미대사, 외교안보연구원(현재 국립외교원) 연구위원을 거쳐 1982년 6월 전두환 대통령의 비서실장으로 임명되었다.
1974년 미국 타임(Time)지가 선정한 "1980년대를 움직일 세계 인물 150명" 중 1명에 포함됐다.
장남 함재봉은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를 지냈고,
지금은 아산정책연구원(정몽준의 싱크탱크) 원장이다.
차남 함재학은 현재 연세대 로스쿨 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김재익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
(1938 ~ 1983)
-서울대 외교학과
-한국은행 조사역
-청와대 경제수석 자문역
-서울대 문리과대학 강사
-경제기획원 장관 비서실장
-경제기획원 경제기획관
-경제기획원 기획국장
-경제기획원 경제협력차관보
-> 그가 전두환 정부의 경제수석비서관으로 임명되자 그의 친구들은 이렇게 비아냥댔다. "재익이 저 놈은 김일성 밑에서도 일할 놈이야"
아내로부터 이야기를 전해들은 김재익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김일성 밑에 가서 그의 생각을 바꿀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해야지"
그는 청와대로 가기 전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경제의 개방화와 국제화는 독재체제를 어렵게 하고, 시장경제가 자리잡으면 민주적인 정치는 자연히 따라온다."
경제수석비서관이 된 후 금융실명제를 추진하려고 했으나 정치권과 대통령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그외에도 정보산업 육성, OECD 가입, 수입자유화 등의 정책을 추진했다.
아들 김한회는 현재 미국 변호사로서 국군포로와 북한인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활동하고 있다.
서석준 부총리
(1938 ~ 1983)
-서울대 외교학과
-경제기획원 사무관
-경제기획원 물가정책과장
-경제기획원 물가정책국장
-경제기획원 경제기획국장
-경제기획원 경제차관보
-경제기획원 차관
-KDI 자문연구위원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
-상공부 장관
-> 성주농업고등학교(현재 경북 성주고등학교) 2학년 때 검정고시로 서울대 외교학과에 합격했다.
수출 200억불을 이뤄낸 인물이자, 지금의 물가안정대책과 수급안정대책을 만들어낸 인물이다.
최연소 상공부 장관을 지낸 후, 최연소 경제기획원 장관으로 임명됐다.
이범석 외무부 장관
(
-고려대 영문학과
-한국적십자사 청소년부장
-외무부 국제기구과장
-외무부 의전실장
-유엔대표부 참사관
-주미대사관 참사관
-주 튀니지대사관
-한국적십자사 부총재
-남북적십자회담 수석대표
-주 인도대사
-국토통일원 장관
-대통령 비서실장
-> 고려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외교관 생활을 시작했다. 1972년 남북적십자회담(7.4 공동선언)에서 남측 대표단장(적십자사 부총재)을 맡았다.
1980년 국토통일원(현 통일부) 장관, 1982년 대통령 비서실장, 1983년 외무부 장관이 되었다.
김동휘 상공부 장관
(1932 ~ 1983)
-서울대 정치학과
-주독(독일)대사관 3등서기관 겸 부영사
-외무부 정보2과장
-주독대사관 1등서기관 겸 영사
-외무부 조약과장
-주일대사관 참사관
-외무부 구미국장
-외무부 미주국장
-외무부 경제차관보
-문화공보부 차관
-주이란대사
-외무부 차관
-> 외무부에서 26년간 일한 정통 외무관료. 영어회화 실력과 균형감각이 매우 뛰어났다.
전두환 대통령은 "통상교섭에서 가장 중요한 건 영어"라고 말하면서 그를 상공부 장관으로 임명했다.
서상철 동력자원부 장관
(1935 ~ 1983)
-미국 클라크대학교 조교수
-IBRD 부설 경제개발연구소 교수
-고려대 경제연구소장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조세제도심의위원회 위원
-IBRD 한국대표 교체이사
-IMF 상임대표이사
-건설교통부 차관
->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일하다가, 1982년 5월 건설교통부 차관으로 임명됐다. 1개월 후 동력자원부 장관으로 승진했다.
초대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 서상목 전 의원의 친형.
이계철 주 버마대사
(
-고려대 상과대학
-주카이로총영사관 부영사
-외무부 북미1과장
-주미대사관 참사관
-주 우간다공사
-주 서독공사
-주미공사
-유엔대표부 공사
-외무부 미주국장
-> 경력 26년의 베테랑 외교관. (북한 특공대의 눈에는) 전두환 대통령과 외모가 유사했다.
그를 전두환 대통령으로 착각한 북한군 특공대는 그가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폭탄을 터뜨렸다.
심상우 민정당 의원
(
-전남매일신문(현 광주일보) 사장
-호남전기공업 사장
-광주일보 명예회장
-민정당 의원
->전남매일신문(현 광주일보)과 호남전기공업(현 로케트전기)의 사장을 지내다가 정계에 입문해 1980년 민정당 초선의원(광주시 동구, 북구)이 되었다.
사건 5개월 전, 민정당 총재(겸 대통령 전두환) 비서실장에 임명됐다.
개그맨 심현섭의 아버지.
이기욱 재무부 차관
(1938 ~ 1983)
-서울대 정치학과
-경제기획원 기획관리실 서기관
-경제기획원 기획관리실장
-경제기획원 자원국장
-주미공사
-외무부 근무
-국회 재무위원회 전문위원
-> 김재익의 서울대 동기. 김재익과 함께 1980년대 경제정책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김용한 과학기술처 차관
(1929 ~ 1983)
-서울대 상과대학
-군산남중학교 교사
-재무부 예산국 직원
-경제기획원 기업예산과장
-경제기획원 예산총괄과장
-경제기획원 기획국 투자2과장
-경제기획원 협력국 경협2과장
-경제기획원 조정관실 과장
-경제기획원 부이사관
-경제기획원 예산심의관
-경제기획원 물가정책국장
-경제기획원 예산국장
-경제기획원 예산실장
강인희 농수산부 차관(사진 없음)
(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경제기획원 사무관-경제기획원 차관
-농수산부 서기관
-주이탈리아대사관 농무관
-농수산부 농업개발국장
-농수산부 농업기획관
-농수산부 농정차관보
-농수산부 식량차관보
민병석 대통령 주치의
(1929 ~ 1983)
-서울대 의대
-가톨릭대 의대 교수
-강남성모병원 내과 과장장
이중현 동아일보 기자
(1950 ~ 1983)
-서라벌예술대학(지금의 중앙대 예술대학) 사진과
-경향신문 사진부 기자
-조선일보 사진부 기자-중앙일보 사진부 기자
하동선 경제기획원 산하 해외협력위원회 기획단장(차관급, 1936 ~ 1983)
(
-재무부 안정기획과장
-재무부 금융제도심의관
-재무부 이재국장
-재무부 재산관리국장
-재무부 세정차관보
-경제기획원 기획차관보
이재관 청와대 공보비서관
(
-서울대 영문학과
-한국일보 기자
-경향신문 기자
-문화공보부 해외공보관실
-문화공보부 캐나다공보관
-문화공보부 홍보조정관
-문화공보부 홍보조사연구소 홍보연구관
-문화공보부 홍보실 기획부장
한경희 대통령 경호실 소속 경호관
정태진 대통령 경호실 소속 경호관
그들의 마지막 모습
(이기백, 심상우, 함병춘, 이계철, 서상철, 김동휘, 이범석, 서석준)
(정부 각료 중 유일한 생존자인 이기백 전 합참의장)
(사고 당시 입고 있었던 군복)
올해 3월 출범한 "아웅산 순국 사절 추모비 민-관 건립위원회(위원장 권철현 세종재단 이사장)"의 노력과 박근혜 정부의 지원으로
12월 20일 미얀마의 사건 현장에 추모비가 세워질 예정이다.
https://m.ilbe.com/view/2147594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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